정치 역사 상식 (영국 두번째 이야기 - 미국의 독립혁명)

2020. 12. 8. 19:05상식 정보

안녕하세요 정치 역사 상식 영국 혁명 이야기 두 번째로 이어갑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1641년 아일랜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로의 독립을 원했습니다. 찰스 1세가 아일랜드 지역에도 영국 국교회를 강요했고 아일랜드에서는 보복으로 영국 국교도 수천 명을 집단 학살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의 아일랜드에 대한 분노는 가톨릭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고, 가톨릭에 너그러운 왕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가 의회는 가톨릭과 국교회 쪽인 온건파와 청교도를 믿는 시민의 강격파로 나뉘었습니다.

 찰스1세는 아일랜드 진압군을 만들려고 하는데 의회가 지휘권을 내놓지 않자 독자적으로 군대를 편성했고, 이로써 왕의 군대와 의회권이 나뉘어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를 '청교도 혁명'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왕당파가 우세한 편이었으나 의회파에 크롬웰이 등장했다. 크롬웰은 동부 청교도들을 모아 철기 군을 조직하며 의회 파가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7년 동안의 내전은 의회파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찰스 1세는 의회파에 체포되었고 재판에 부쳐져 사 형판경을 받고 참수되었습니다. 왕국의 주권자인 왕이 죽었으니 주권은 이제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주권은 당시 내전에서 승리한 의회파에서 가져갔고 권력은 크롬웰이 장악했습니다. 그는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가졌으나, 왕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공화정이라고 부릅니다. 국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자신의 종교인 청교도에 입각한 금욕적인 생활을 국민들에게도 강요했으며 아일랜드에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하는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크롬웰의 지배로 영국인들은 공화정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크롬웰이 죽고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이었으나 8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고 영국 정치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들어섰습니다.

 의회의 선택은 프랑스에 있는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2세를 왕으로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국의 왕정은 복구되었습니다. 찰스 2세는 아버지인 찰스 1세가 의회에 의해 처형된 기억이 있었을 텐데도 국교회를 중시하며 망명 시 보았던 프랑스 루이 14세의 강력한 절대왕정을 동경했습니다. 찰스 2세가 집권중인 1665년과 1666년의 런던은 큰 사건들을 겪게 됩니다. 런던에서 흑사병이 발병해 런던 인구의 1/6이 사망했고 다음 해에는 한 빵집에서  시작된 화재의 런던의 상당 부분이 소실됩니다. 밖으로는 해상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전쟁 까리 치러야 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영국 왕실은 프랑스와의 비밀협정을 맺었는데 내용 중에는 찰스 2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찰스 2세의 지지도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왕의 종교뿐 아니라 후계자도 문제였습니다. 아들이 없었던 찰스 2세의 후계자는 동생인 제임스 2세였는데, 그는 독실한 가톨릭교도였습니다. 찰스 2세가 유연하고 쾌활한 성격으로 진지한 면이 부족했다면 제임스 2세를 형과 반대였다. 추진력과 강단은 있으나 융통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런 그의 종교는 가톨릭이었고 왕위 서열은 2위였습니다.

 제임스는 왕이 되기 전부터 종교로 인한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영국 법에는 모든 공직자가 의무적으로 국교회에 충성해야 했는데, 제임스는 이 서약을 거부해 관직에서 물러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제임스 2세는 왕이 되기 전부터 의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으나 찰스 2세는 생전에 자신의 동생을 끝까지 감쌌습니다.

 결국 1685년에 찰스 2세가 죽고 제임스 2세가 새로운 영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제임스  2세는 자신의 종교인 가톨릭에 대해 방어적이고 비타협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회에 저항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2세의 나이가 이미 50이 넘었고 그에게는 후게를 이을 아들도 없었습니다. 의회와 시민들은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1688년 왕비가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자식의 종교는 보통 부모를 따르기 때문에 제임스 2세와 왕비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의회는 빠르게 움직였고 왕세자가 태어나자마자 의회는 왕위 서열 4위인 네덜란드의 총독 윌리엄과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에게 공동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윌리엄은 대군을 이끌고 영국 땅에 상륙했고 제임스 2세는 저항 없이 프랑스로 망명한다. 윌리엄 3세가 된 영국의 공동 왕은 영국 의회의 위력을 실감했고 의회는 왕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양쪽의 불신으로 나온 문서가 '권리장전'입니다. 청교도혁명의 과정에서 나온 권리췅원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영국은 왕권을 의회가 법으로 한계 짓고 통제할 수 있다는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것입니다.

 윌리엄 3세와 메리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메리가 먼저 죽고 왕으로 있던 윌리엄 3세마저 세상을 뜨자 메리의 동생인 앤이 왕이 되었습니다. 앤도 후계자가 없이 죽자 영국은 후계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왕이 된 사람은 제임스 1세의 손녀인 아들인 독일의 하노버 공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조지 1세로 즉위했으나 영어를 쓰지 못했고 정치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아을 대신해서 행정을 담당할 권력기관이 필요했고 의회가 행정부까지 책임지는 내각책임제가 영국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영국의 왕은 대대로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 독립혁명

 미국은 미국이기 전에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미국은 영국에 저항하기 위한 식민지 사람들의 전쟁으로 독립하게 되었는데, 독립전쟁이라기보다 독립혁명이라고 불립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북아메리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북아메리카에는 원래 인디언이라고 불린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신항로 개척 이후 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도전했으나 실패하다가 17세기 최초의 식민지 버지니아를 건설했습니다. 이후 종교적 자유를 위해, 혹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가족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했고 북대서양 연안에 13개의 식민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총독을 파견했으나 거의 간섭하지 않았고, 13개의 지역은 각기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시민들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8세기 1760년, 조지 3세가 왕이 되면서 상황이 변했습니다. 당시의 지역에는 프랑스도 진출 해 있었습니다. 경쟁 관계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모두 영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몰아낼 수 있게 된 영국은 그동안의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을 식민지 사람들에게 부담시키기로 했습니다.

 영국 의회가 선택한 방법은 기존의 세금을 올리는 것보다 새로운 항목을 신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밀무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1765년에는 인지세법을 만들었습니다. 인지세법이란 식민지에서 파는 물건에 인지를 붙여야만 매매할 수 있게 하는 법입니다. 인지는 일종의 우표입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상상해보면 책, 노트, 필통 등 다양하고 같은 품질이라면 가격이 저렴할수록 좋을 겁니다. 인지세법으로 물건에 인지를 붙여야만 한다면 당연히 그만큼의 물건 가격이 오를 것입니다. 식민지 사람들은 저항했습니다.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과 관련된 법을 영국에서 만들 때 세금을 낼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식민지 사람들은 '대표 없이 과세할 수 없다' 저항했고 인지세는 1년 만에 폐기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속 법안이 마련되었습니다. 타운센트 법이라고 하는데 유리, 납, 페인트, 종이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이었습니다. 식민지 사람들은 다시 저항했고 영국은 1770년, 차에 관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특권만을 남기고 다른 세금을 없앴습니다.

 이런 조치에도 식민지 사람들의 영국에 대한 불만은 커졌는데 보스턴에서는 영국군과 식민지 사람의 다툼으로 영국군이 발포한 총에 5명이 죽고 6명이 다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군인들은 재판에 넘겨졌으나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고 식민지 사람들은 세금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니 많이 봐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