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상식 (산업혁명 두번째 이야기)

2020. 12. 7. 21:30상식 정보

역사 상식 (산업혁명 두 번째 이야기)

첫 번째 내용에 바로 내용 이어갑니다~

'울타리를 치다'라고 해석되는 이 운동의 시작은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중세 말 농민들은 효율적인 농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토지를 교환하고 선을 그으며 자기 소유로 합의된 토지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평화적인 움직임은 봉검영주들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봉건 영주들은 농민들을 몰아내고 비합법적, 폭력적으로 울타리를 쳐 토지를 사유화했고 이것이 1차 인클로저 운동입니다.

 18세기 후반에는 2차 인클로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영국의 첨단산업은 모직물 산업이었습니다. 모직물이란 양털로 만든 천을 뜻하며 흔히 겨울에 입는 모직코트를 떠올리면 됩니다.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모직물의 원료가 되는 양을 키우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울타리를 친 영주는 농사짓던 농민들을 쫓ㅂ아내고 양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일부 땅을 가진 농민 중에는 양을 키워 부자가 되기도 했는데 이들은 귀족에 가까울 정도의 재력과 세력을 키웠습니다.

 1,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해서 노동자가 되었고, 자본을 가진 상인과 자영농, 지주 등은 토지 등의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가 되어서 산업혁명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자 농업 중심의 사회는 빠르게 산업사회로 발달했고,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지는 소량의 물건 대신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물건들이 가격과 품질면에서 시장을 장악해갔습니다. 18세기부터 시작 도니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팔린 옥양목이라는 면제품이 바로 영국산 면제품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주변국으로 퍼져서 각국은 산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삶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물질적 풍요를 얻게 되었고 공장이 운영되면서 시간의 개념이 중요해졌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여러 문제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많은 도시에 무분별하게 공장이 세워졌고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자 도시 내 환경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매연으로 인한 공기 오렴, 상하수도 시설 부족으로 인한 수질 오염이 심각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져갔으며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은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효율성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9세 이하의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질 정도로 아동노동착취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정치적 혁명의 배경으로도 작용했습니다. 땅과 영주에 속한 농노였던 사람들이 도시의 노동자가 되면서 이전에 비해 자유로워졌습니다. 지금 같은 정치권을 가지는 자유는 아니었지만 신분상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자본가 중심의 시민들은 더 많은 이윤을 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을 만들어야 했고, 정지척인 권한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시민들은 기존의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의 성과를 이룬 시민들은 의회에 참가해 압력을 행사했고 국가의 법이 자신들 자본주의 성장을 돕도록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민혁명 직후에 재산을 기준으로 선거권을 주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선거권이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갖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선거권 요구 운동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1840년 2월 혁명과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 대표적입니다. 노동자들의 선거권은 시민혁명 직후에 바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투쟁의 결과물로 얻어진 거였습니다.

 산업혁명이 정치만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지구 상에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곳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원하는 자본가에게 시장은 국내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에서는 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의 특성상 물건이 다 팔리지 않아서 재고가 쌓여 경제가 악화되는 공황이 바로 위기였습니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면 자본가는 이윤을 얻지 못하니 공장 문을 닫아야 하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 일하는 노동자는 실업자가 되고, 실업자가 많아지면 경기는 어려워집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했습니다. 산업화에 성공한 다른 국가들 또한 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새로운 시장의 확보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다른 나라를 자국만의 시장으로 삼기 위해서 식민지 경쟁을 치열하게 해 나갔습니다. 에스파냐가 남미를 식민지로 삼던 시기만 하더라도 식민지는 그 나라의 물건이나 원료 자체를 약탈하거나 농장을 운영해 그 생산물을 수탈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에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에게 식민지는 물건을 팔아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시장으로 용도가 확장되었습니다. 19세기 이런 식민지 경쟁을 제국주의라고 하고 , 제국주의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 변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혁명은 바로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의 농경 혁명

신석기 혁명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신석기시대에 이전과는 다른 어떤 질적 양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는 생존과 관련이 있는데,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자연에 100% 의존해서 자연에 있는 것들을 사냥하고 채집해 먹고살았습니다. 그러다 신석기시대가 되면 인류식량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인류가 식량을 생산하게 된 배경들 중 하나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설이 있습니다. 인류는 극심한 기후변동이 반복되는 곳에서 변화된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돌을 원하는 모양으로 정교하게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했고 식량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원시적 농경이 시작된 곳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현재 추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관찰로 곡식을 땅에 심어 기다리면 심은 씨앗의 몇 배를 식량으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식량을 구하는 방법이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인류의 생활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정착을 해야 했고 집단의 규모도 구석기 보다 커졌습니다. 자연과 농경의 이치를 깨닫게 된 사람들은 더 많은 식량생산의 위해 물을 다스리고자 했고 치수에 성공한다면 식량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먹을 것이 풍부해지면 인구는 증가합니다.

 생산력과 인구 사이에는 순호 나이 일어났습니다. 생산력이 높아져 인구가 증가하면 많은 인구로 치수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었고 많은 인력으로 관개농업의 성공 가능성고 커졌습니다.

 많아진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은 도시가 되었고 먹고 남은 '잉여물'까지 생겼습니다. 이 시기의 인류의 기술은 더욱 발달해 청동을 다루게 되어 청동기 시대라고 불렸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계층이 생겼고 사회가 분업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점차 문명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듯 농경과 목축은 단순히 식량문제 해결을 넘어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류가 되는 변화를 가져온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이란

변화에 성공하여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혁명이란 걸 무엇일까요. 사전에서 혁명을 찾아보면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혁명이 일어나면 단번에, 새로운 것의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 쿠데타인지, 변혁인지, 개혁인지, 의거 인지 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는 것은 변화된 세상에 살며 혁명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후대 사람들의 몫입니다. 즉 특정 사건이 혁명으로 평가되는지 아닌지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혁명은 현재에도 진행 중입니다. 2016년 추워지던 계절, 대한민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섰습니다. 사람들ㅇ느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자신이 선출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탄핵을 원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충분하게 자각하고 있었고 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2항에는 '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계속 되뇌며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정치력을 행사했습니다. 과정은 평화로웠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역사는 현재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거의 자료가 됩니다. 촛불은 가시적으로 정권을 바꾸었지만, 촛불을 든 시민들이 추구한 자유와 평등과 평화의 이념들은 변화의 과정 중입니다. 광장의 촛불이 후대에도 혁명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주인들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